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제주도 여행의 기록을 마무리하며 - 자전거 여행의 장단점

Travel

by 송온마이립스 2015. 10. 16. 21:05

본문

협찬: 넥슨 컴퓨터 박물관


 자전거 여행 포스팅 시리즈를 SNS에 공유했더니 꽤나 반응이 좋았지만, 내가 남자라고 착각하는 분들이 왕왕 있었던 것 같다. 보다 매혹적인 제목을 짓기 위해 '여자친구와'라는 단어를 넣었더니 그런가. 나는 평소에 자전거를 20km 이상 타본 적이 없었던 20+N살의 저질체력 여성이다. 그래서 오늘은 '5편'이라는 제목 대신, 흔해 빠지고 장황한 제목을 지었다. 김훈의 '자전거 여행'처럼 심플한 제목에 담백한 문장으로 여러분을 울리고 싶지만, 깜냥이 안된다. 어쨌든 여행 기록의 마무리. 


 2015년 한여름, 애인과 함께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다녀왔던 것은 다시 되돌아봐도 가장 뜻이 깊은 여행이었다. 옛 어르신들 말씀이 틀린 것이 없다. '개고생'을 했던 경험이 결국 모두 추억이 되었다. 아래는 제주도 자전거 여행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서, 고생을 하며 체득했던 자전거 여행의 장점과 단점에 대해 간단히 정리해본다. 




'오르막길 체인의 끊어질 듯한 마디마디에서, 기업의 톱니에서, 뒷바퀴 구동축 베어링에서, 생의 신비는 반짝이면서 부서지고 새롭게 태어나서 흐르고 구른다. 땅 위의 모든 길을 다 갈 수 없고 땅 위의 모든 산맥을 다 넘을 수 없다고 해도,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김훈, <자전거 여행> 中




제주도 자전거 여행의 장단점


1. 자전거 여행은 자동차나 스쿠터에 비해 제주도 구석구석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는 제주에서 몇 박을 머무를 것인지에 대한 계획 이외의 구체적 일정을 정해두지 않았다. 그저 곳곳의 맛집들과 숙소를 서치했을 뿐이다. 이는 자전거 여행 시 가고 서는 것이 자유로운 점 때문. 우리에겐 오르막길을 오르다 힘들면 얼마든지 동네 어귀 카페에서 쉬어갈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또한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다 만난 어민들의 일을 우두커니 서서 살짝 훔쳐보기도 했고, 굉장히 더웠던 날에는 무엇에 홀린 듯 곽지과물해변의 분수대에서 신나게 물놀이를 하고 물을 뚝뚝 흘리면서 라이딩을 한 적도 있었다. 


더위 먹어 기어들어온 카페. 빙수 한 그릇에 만화책을 보고 한 숨 때렸다. (그 와중에 나스메 소세키를 읽겠다고 꾸역꾸역 가져온 애인.) 천계영이 짱!


즉흥적으로 시간적 아다리가 맞았던 제주 프리마켓, 아라올레 직거래 장터에 가기도 하고


서귀포에서 미래의 음악가들을 만나기도 하고


숙소로 가기 전, 예뻤던 학교 잔디밭에서 뒹굴대고 놀기도 했다.


 함께 게스트하우스에서 묵었던 자동차, 스쿠터를 렌트한 여행객들과 이야기 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들은 이동에 크게 제약을 받지 않는 듯 했다. 가령 예를 들면 오늘은 애월, 내일은 성산일출봉과 같은 루트가 가능했던 것. 그러나 우리는 애월에서 성산 일출봉을 가기까지 무려 6일이나 걸렸다.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았음.) 그들은 제주의 구석구석의 면모를 살펴볼 여유가 없이 냅다 관광지만을 향해 달린다고 했다. 사실은 당시에 그 이야기를 들을 때, 불볕 더위에 자전거 페달을 밟던 나는 부러워 미칠 것 같았지만, 다시 여행을 한다해도 자전거를 선택할 것이다. 그래도 짧은 일정 속에서도 제주도민의 삶을 살짝 엿볼 수 있었던 것은 자전거로 여행을 했기 때문이다. 제주도 한 바퀴를 자전거로 이틀 만에 돌았다는 자전거족의 무용담을 종종 접할 수 있는데,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행 일정이 여유가 있다면 속도전보다는 여유있는 자전거 여행을 즐기기를 권하고 싶다. 



2. 건강한 육체와 건강한 마음, 그리고 탄탄한 하체 근육은 보너스.


비실이다! 비실이가 나타났다!


 난 평소에 자전거로 한강 나가기를 아주 대단한 일로 생각하는 허접 동네 라이더였다. 10km 정도 달리면 "아, 오늘 나 무리했다." 싶었던. 그러던 허접이가 제주도를 매일 같이 30km 이상 꾸준히 열흘을 달리면서(어디가서 자랑하기 민망한 키로 수...) 일단 가시적으로 체형의 변화가 생겼다. 발목에는 아킬레스건이 뚜렷해졌고, 허벅지는 매일 헬스장에서 스쿼트를 한 것 마냥 단단해졌으며, 온돈이가 올라갔다! 또한 자연 태닝을 위해 일부러 민소매와 짧은 바지를 입고 달려, 완전한 구릿빛 피부가 되었다. 좋게 말해 구릿빛, 실은 그냥 깜시.



온돈이가 작고 예뿐 나가튼 뇨자


 뿐만 아니라 나같은 비실이도 해내었다는 성취를 느꼈달까. 소모하는 칼로리가 많으니 잘 먹기도 먹고, 매일 같이 잠도 잘 잤다. 불면증은 현대 도시인의 병이라는 말을 약간 실감. 힘들 것만 같았던 자전거 여행을 마무리하는 날,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드는 것이 사실임을 스스로 체득하는 순간이었다. 



3. (커플 여행의 경우) 최악의 상황에서 상대의 진면목을 볼 수 있다는 장점?



 징징이가 따로 없었다. 덥고 힘드니 火가 머리 끝까지 솟아 짜증 섞인 말을 틱틱 내뱉는 경우가 많았다. (제가요...) 오죽하면 제주에서 내 유행어가 "나 지금 제주공항 갈래!". 씨알도 안 먹히는 잔챙이같은 협박에도 '너만 힘드냐 나도 힘들다'라고 맞짜증내지 않고 더워? 힘들어? 편의점에서 쉬어갈까? 맛있는거 먹을까? 매번 물어봐주고 챙겨주는 애인 덕분에 끝까지 여행을 마무리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좋은 사람이었다. 심지어 그는 훈련소에서 시간을 쪼개어 보내주는 편지에 '훈련소에서 나의 체력이 굉장히 상위권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여행 때 날 너무 쪼았다. 조금 더 설렁설렁 배려해주면서 달릴걸.'이라는 고마운 마음을 적어보내줬다. 고마운 애인. 그렇다면 다음에는 뚜껑 열린 외제차로 제주도를 달리자. 



그 외의 정보


+ 자전거로 여행한다면 특별히 우도 갈 필요가 없다. 어차피 우도 가서도 자전거나 스쿠터 렌트해서 한 바퀴 달리는 것일 뿐. 자전거 여행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 메리트가 없는 여행 장소다. 우도까지 자전거를 싣고가는 배삯 같은 것도 생각하면 자전거 여행족들에게는 굳이 추천하고 싶지 않은 곳. 


+ (새로 생겼다는) 자전거길 따라가지 말고 해안도로로 달리자. 앞서 포스팅에서도 적어놓았듯, 자전거길이라고 만들어 놓은 길이 별로다. 노면도 울퉁불퉁, 길이 끊어지고, 돌멩이 투성이에, 가로등도 없다. 제주에서는 웬만하면 야간 라이딩을 하지말자. 死을 수도 있을 것 같다.


+ 아름답기로 소문난 1100번 도로와 같은 곳을 자전거로 도전해보는 마음은 살짝 접는 것이 좋겠다. 위험할 뿐만 아니라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굉장히 힘들다. 제주의 한라산과 오름들은 만만치 않다. 난 오설록뮤지엄을 가는 오름 사이의 그 길에서 결국 '끌바'를 하다가 주저앉고 말았다. 


사진만 예쁘게 나오고, 사실은 중국인 관광객들로 버글버글했던 오설록!



 거창한 '장단점'이라는 제목과는 달리 이렇게 자전거 여행의 장점만 적어놓다보니 내가 뽐뿌(?)를 넣는 사람이 된 것 같은데, 사실은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너무 덥고 힘들었다. 허벅지와 엉덩이가 터질 것 같은 경험을 처음 했기에 나는 매일 아침 근육통에 시달렸다. 처음엔 몸살이 난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고된 땀을 흘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길을 달려 목적 지점에 도달한다는 그 성취와 소소한 기쁨들로 인해 낮의 많은 어려움들을 잊고 매일 다시 페달을 밟을 수 있었던 것. 의자에 앉아 PC 모니터만 보면서 가끔 허리를 돌리면 우두둑 소리가 나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값지고, '복된' 경험이다. '살아서 몸으로 바퀴를 굴려 나아가는 일은 복되다.' 그러므로...


 웬만하면 자전거 여행은 선선한 계절에 하기를 마지막으로 권한다. ㅋㅋㅋ 끝.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