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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서울의 프리랜서, 오늘의 일터를 소개하지] 세컨스페이스는 스터디 카페일까? | 봉천, 서울대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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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온마이립스 2018. 5. 10. 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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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소개를 시작하지. 난 트레블러가 되고 싶은 서울의 프리랜서! 올해는 사무실 출퇴근을 벗어나 프리랜서로서 적게 일하고 적게 벌기로 혼자서 다짐한 해였는데, 내 나약한 의지만 확인한 것 같다. 벌써 5월인데 야심찼던 자기계발의 기회도, 몰입의 섹시함을 보여주는 업무 역량도, 먹고싶은 거 다 사먹을 수 있는 부유함도 다 놓쳤다고 본다. 


서울연극센터 계단에서 만난 바로 내 마음 (무시무시한 필터 효과를 깔아줬다)


아뿔싸. 내 인생도 100세 시대 기준, 1/3을 넘어서고 있지 않은가. 디지털 노마드라는 번지르르한 브랜딩으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크게 반성하며, 정신 차리자 싶어 내 멋대로 두 가지 프리랜싱의 원칙을 정했다.


첫째, 조금 이른 브런치를 먹고 오전 11시까지 출근 ~ 오후 6시에 퇴근하기.

: 그 날 '해야만 하는!' (최소한으로 일하기) 일이 일찍 끝나면 영어 공부를 하거나, 책을 읽거나, 그것마저 하기 싫으면 음악이라도 찾아듣고 오자.


둘째, 매일 다른 곳으로 출근하고 기록하자.

: 반복되는 루틴을 쉽게 지루해하는 나를 위한 특약의 처방



그래서 시작하는

디지털 노마드, 서울의 프리랜서

오늘의 일터를 소개하지 시리즈 

(네이밍 실패다. 왜 이렇게 길어... 모바일 여러분 죄송해요...)



나는 까다로운 서울 디지털 노마드다. 내가 원하는 조건은 대충...


- 공간 구성이 쾌적한가? (동선, 자리 편함)

- 햇살이 들어오는가? (지하 싫음)

- 따릉이를 타고 갈 수 있을만큼의 거리인가? (넘 멀면 가면서 힘 다 빠짐)

- 너무 비싸지는 않은가? (돈 없음)

- 음악은 적당히 거슬리지 않는 선에서의 선곡과 볼륨인가? (음대 전공 부심)

- 실제 업무 효율은 어떠한가? (총평)


등이 있다. 이제 진짜 세컨스페이스 리뷰 시작.




위치




우리집에서 따릉이를 타고 열심히 밟으면 도어 투 도어  15분 거리, 설렁 설렁 밟으면 20분 거리에 있다. 봉천역에서 여자 걸음 3분이면 도착하고 사람들은 이걸 '엎어지면 코 닿을 곳'이라고 말한다. 2층에 있고 전반적인 건물 외관 첫 인상은 그저 그러함. 디자인이라고 하나도 없을 것 같은. 1층에 상도 늘보리 집에는 저녁마다 사람이 버글버글하다. 맛있나보다. 다음에는 퇴근하고 늘보리에서 혼밥해야겠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처음에 이걸 보고 솔직히 피식 웃었다. 일단 개인적으로 저 고딕 폰트를 안좋아하고, 프랑스 디자이너가 설계했다는 거, 세계 최초라는 거, 카공/코피스/욜로가 무슨 뜻인지 번뜩 몰라서 내가 나이들었구나 씨ㅠㅠ... 뭐 이런 잡다한 생각들이 스쳐지나가는 팝업 포스터였음. 


카공은 카페에서 공부하는 사람을 말하는 것 같고, 욜로는 유 온리 라이브 원스까지는 알겠는데 코피스는 도대체 뭐지? 코(커)피+오피스인가? coffee + office. 뭐 대충 그런 느낌인 것 같은데 귀찮아서 찾아보지는 않았음. 



아직 할 말이 끝나지 않았다. 사장님은 이 공간에 대한 정의 혹은 브랜딩을 꽤 고민하신 듯. 만화책, 전공서적을 봐도 되는데 (허락의 느낌), 프리랜서와 소일거리, 혼술하는 사람은 환영한다니 (적극 권장의 느낌) 대충 어떤 분위기일지 느낌이 온다. 

스터디 카페도 아니고, 코워킹 스페이스도 아니고, 이걸 뭐라고 해야하지?


사장님 블로그. 글을 재밌게 잘 쓰셔서 공지글도 웃으면서 읽음.


사장님이 친절히 정의하신 내용을 모두 종합해보면 오피스워크를 중심으로 만든 1인용 성인용 스터디 카페 & 펍이라고 한다. 좀 복잡한데 딱 나를 위한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주로 하는 프로젝트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전화를 종종 해야한다. 공간이 너무 조용하면 그때마다 나가서 받는게 상당히 귀찮았고, 반면 일만 하느냐! 일을 얼른 끝내고 공부를 또 해야 한다. 공부를 각잡고 그럼 몇 시간을 하느냐? 그것도 아니고 좀 편하게 앉아서 책도 읽어야 한다. 이렇게 할 일이 입체적인 나같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다. 세컨스페이스가 바로 나의 세컨스페이스가 될 예감이 들었음.



공간 소개



입구 문을 대차게 열면 바로 보이는 시야



그리고 그 왼쪽 바테이블이 있고 주방에 계신 사장님. 음료나 음식 연구도 하시고 컴퓨터로 뭔가 작업도 하시고 항상 바빠보이시더라. 아참, 입구에서 디자인이나 인테리어에 대해서 약간 의구심을 가졌는데 공간에 들어서면 바로 느껴지는 인상은 '신경 많이 쓰셨네'였다. 엄청 감각적인 공간은 아니지만 (대개 그런 곳은 힙한 카페들이고 굉장히 불편해서 빨리 커피 마시고 가야함) 이용자 중심에서 가장 편한 공간을 신경써서 셋업하신 느낌이다. 알고보니 전직이 디자이너셨고 UX/UI... 같은 거 많이 만져보셨겠지. 유저 중심... 사장님 블로그를 가보면 얼마나 하나하나 고민하시면서 신경쓰셨는지 대충 짐작이 된다.


사장님 블로그 링크


물론 공간 역시 깔끔하고 예쁘다! 우드와 블랙, 녹색의 하모니. 블랙을 기본 색상으로 사용하시다보니 전반적으로 차분한 느낌이 든다.



오늘의 내 자리. 창가 자리를 골랐다. 창가를 빙 둘러 바를 만들고 소파를 두셨다. 보면 알겠지만 소파의 앞뒤 너비가 매우 길다. 그건 무슨 말이냐면 바를 책상 삼아 뭔가를 하려면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 한다는 거다. 처음에는 허리를 세우도 한두시간 일하다가 좀 불편한데? 생각하고 급 피곤해져서 뒤에 쿠션을 받치고 아예 누워버렸다. 그때 알았다. 노트북을 허벅지에 받치고 다리를 쭉펴서 기대누워서 일할 수 있는 완벽한 쿠션의 각도와 세로 길이의 소파라는 것을....


그렇구나. 여기는 스터디 카페가 아니라 정말 얼마나 편하게 일을 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완벽히 일하는 공간이구나~ 유레카!



2인석. 한 쪽은 아빠 다리를 하고 앉아야 하고 반대편은 그렇지 않다. 은근 독특하고 재밌는 부분이다. 1인 전용 카페&펍이라고 하더니 확실히 둘이 오면 약간 곤란하겠다? 한 명만 세상 편해짐.



여기는 1인용. 벽이 낮은 대신 발이 있음. 발 넘어 보이는 모습은 나와 대화하고 있는 사장님. 



안쪽 벽의 공간들. 여기 특이한 점은 슬라이딩 데스크다. 아빠 다리를 하고 쇼파에 쭉 기대앉아서 책상을 당겨 사용하면 그 요즘 유행하는 슬라이딩 베드 테이블? 처럼 사용할 수 있다. 



남여 공용이지만 화장실 깨끗하다. 여성을 위해 사용 후 변기 뚜껑을 내리라는 남성분들을 향한 부드러운 권고가 적혀있음. 아, 사진은 못찍었는데 화장실 옆에 작은 흡연 공간도 있다. 어제 갔을 땐 분명히 목공 자재가 쌓여있는 어수선한 창고였고 (흡연자는 그런 어수선함에 익숙하다) 전혀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오늘 일하다가 가보니 싹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있고 낮은 의자 2개 세팅과 자동 환풍기 시스템이 되어있었다... 와! 이거 좀 괜찮은 포인트였다. 1) 사장님의 부지런하심 2) 흡연자 배려



내가 사용한 자리의 높은 가벽이었다. 모니터를 설치하고 지금 나오는 BGM의 제목과 가사, 앨범 아트 같은 게 나온다. 음... 의외로 재밌는 요소였다. 일하다가 이거 무슨 곡이지 싶으면 나와서 찾아보고 다시 돌아갔음.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빌보드 차트 같은 것을 걸어두시는지? 아니면 사장님의 페이보릿 선곡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르 통일이 안되어 있어서 다소 정신 사나웠다. 보사노바 > 락 > 팝 > 가요 > 이디엠 > 컨츄리 뭐 약간 이런 느낌이었던 것 같고.


좋았던 것은 완벽히 적당한 음악의 볼륨. 너무 조용하면 괜히 말도 못하고 속닥대야 할 것 같고, 너무 시끄러우면 집중 안되고 그러는데 여러모로 실험을 많이 겨쳐보신 듯, 거의 모든 곳의 자리에서 균등한 크기의 사운드를 느낄 수 있는 것이 좀 신기했다.



이용 방법 및 가격



특별한 방법은 없고 음료 + 시간제 자리값을 내면 된다. 30분에 500원. 근데 210분 이상 사용하면 4,000원 상한을 걸어주신다. 음료 한 잔만 홀랑 마시고 끈덕지게 오래 앉아있을 나같은 친구들은 너무 좋은데, 이렇게 장사하시면 혹시 하나도 안 남으시는 거 아닌가 괜히 걱정됨?



전반적인 음료 가격도 다 쌈. Tea나 Ade를 원하는 손님이 계시기도 했고, 요리류가 좀 늘어나 곧 큰 메뉴 개편 예정이라고 한다. (이거 쓴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곧 옛날 포스팅 자료가 되겠지...) 


아, 그리고 중요한 거! 좋은 원두를 쓰시는 듯 커피 맛이 괜찮다. 보통 스터디 카페를 가면 음료맛은 포기하는데 여긴 그래도 커피가 커피답다. 근데 예가체프라고 하는데 예가체프 특유의 산미는 안느껴짐. 라이트하지만 바디감이 있는 편이닷.



쿠폰도 있음. 스탬프 모양 귀엽다. 저게 뭐냐면



이건데 음료를 저렇게 직접 만드신 듯한 나무 트레이에 꽂아주신다. 우선 컵이 일회용이 아니라는 점에도 크게 감동 받았다. 나는 환경 다큐멘터리 열심히 보고 웬만하면 쓰레기를 만들기 싫어서 텀블러 가지고 다니는 친군데... 유리컵 하나에 진심으로 감동 받았다. 설거지 귀찮지만 환경을 살려야 한다. 대만인가 어딘가는 쓰레기 재활용이 너무 어려워서 모든 음식점에서 일회용 제품 금지법을 제정했다고 한다. 20년부터 시행한다고? 뭐 여튼 저렇게 음료랑 티슈 한장이랑 주문서 영수증 주심.


음료는 다 섞어 주신다. 위에 뚜껑을 덮으니까 안섞고 그냥 먹으면 맛없다고, 아이스 라떼 예쁘게 그라데이션 모양을 내는 대신 그냥 섞어서 바로 바로 마실 수 있게, 첫 모금도 실망하지 않게! 완전한 실용주의자 스타일! :) 



뭐 여튼 긴 리뷰를 끝냈고, 나는 앞으로 종종 가게 될 것 같다. 대학생들이 접근하기에는 위치도 좀 애매한 감이 없지 않아 있고 (서울대 친구들이 많이 오려나? 무서운데?) 그렇지만 앞으로 쭉- 번창하시길 바란다. 우리 동네 썩었다고 눈물로 밤을 지새우다가 드디어 맘둘 곳 하나 생겼기 때문임. 나같이 일하는 프리랜서들이 많이 보였음 좋겠다. 




총평


- 다각도의 공간 만족도 : ★★★☆ 

테이블 높이가 조금 어정쩡하지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쇼파에 편하게 기대 누우면 이보다 완벽할 수 없는 인체 공학적 가구 디자인. 깔끔한 화장실과 감동의 흡연 공간, 스티븐 호킹의 우주 이론을 바탕으로 한 완벽한 파티션 높이?


- 내 의지를 제외한 업무 및 공부의 효율 ★★★★

이제 나만 잘하면 돼.


- 지갑 사정을 고려한 가격 ★★★★★

어제는 둘이 가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두 잔 시키고 4시간 넘게 한 테이블을 썼더니 9천원이 나왔고, 오늘은 혼자 가서 아이스 라떼를 한 잔 시키고 4시간 넘게 있었는데 7천원이 나왔다. 쿠폰은 5번 도장 찍으면 음료 무료라고 하지, 추가 금액 내면 음료 리필도 되지. 다른 코워킹 스페이스에서는 상상하지 못할 가격.


이번 생에 적게 일하고 많이 버소서 사장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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