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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친구와 제주도 자전거 여행하기 2편 - 웜샤워란 좋은 것!

Travel

by 송온마이립스 2015. 9. 30.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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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차저차 자전거 여행을 가기로 계획 했는데, 큰 문제가 있었다. 우리가 꽤 가난뱅이라는 것이다. 주머니 탈탈 털어봐도 럭셔리한 숙소에서 숙박을 한다는 것은 꿈만 같은 일이었다. 숙소를 좋은 곳으로 택하면 밥을 거렁뱅이같이 먹어야 하는데 그건 여행의 참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고, 그렇다고 자전거 여행으로 노곤한 육체를 중년 남녀의 코골이 소리로 울리는 찜질방 바닥 따위에 뉘일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딱 봐도 빈곤해보이는 여행자의 얼굴이다.


 그래서 이것 저것 알아보기 시작했다. 게스트하우스의 가장 저렴한 혼성 도미토리 방은 물론이요. 에어비엔비의 문지방이 닳도록 들락날락하며 1) 저렴한데, 2) 쾌적한, 2) 간지나는 곳들을 하루종일 물색했던 것. 10박을 계획한 여행에 숙박비를 줄이기란 당최 답이 나오지 않더라.


 그러다 자덕 남친의 제의로 알게 된 웜샤워.


"너만 불편하지 않다면 우리 웜샤워를 하자"

"웜샤워가 뭔데?"



 웜샤워란 무엇인가?


따뜻한 샤워... 가 아니고


영어다. 울렁울렁.

https://www.warmshowers.org


 자전거 여행자들을 위해 호스트와 게스트를 연결해주는 사이트다. 그것도 무료로! 호스트들은 대개 자신의 자전거 여행에서 웜샤워를 이용해 본 '따뜻한' 경험으로 인해 본인의 집으로 게스트를 받기도 하는 것 같다. (단, 자전거 여행자에 한정된다는 점.) 가입 방법이 조금 까다롭긴 하다. 꼼꼼히 가입 양식에 맞춰 join을 하시고 여행지에서의 호스트를 찾아보고, 연락을 취하면 된다. 간단함! So Simple! 물론 천사같은 호스트를 만나는 것은 여러분의 Lucky일 것이다.


한국의 웜샤워 이용자 현황. 꽤 많다!



 제주는 아쉽게도 웜샤워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그다지 많지 않았다. 몇 명의 호스트들 중 일부는 오랫동안 접속을 하지 않는다던가 뭐 이런 문제도 있었고. 그러다가 얼마 전에 가입한 것으로 보이는 애월읍 부근의 한 호스트에게 '되면 좋고, 안되도 좋고'라는 마음으로 쪽지를 날려봤는데 결과는 겟 또 럭키! 꺄아~ <3 호스트에게 답장이 왔다. 



 본인이 미국 자전거 여행을 위해 가입하면서 호스팅 설정을 잘 못 해둔 바람에 생면부지인 우리에게 연락을 받게 된 것. 그럼에도 이것도 인연이니 숙소와 간단한 가정식 저녁을 대접하겠다고! 행운의 여신은 우리의 편인 것인가. 오... 이런 감사합니다. 천사같은 호스트에게 감사 카톡을 수십 번 날리고 당일 날 찾아 뵙겠다 인사 드렸다.



 제주도로 출발. 시간이 늦어 더 늦기 전에 제주 공항에서 애월까지 버스로 점프할 계획이었다. 제주의 버스 노선은 왜 그렇게 복잡하고 어렵고 배차 간격이 띄엄 띄엄 한지. 새삼 서울의 대중 교통의 편리함에 감탄했다. 다 큰 어른 둘이서 제주 공항 앞 버스 정류장에서 꽤 쩔쩔 맸던 기억. (자전거와 여러 교통편 호환 경험도 포스팅 할 예정이다.)


참, 제주도 버스 서울처럼 넓지 않고 고속버스 느낌이다. 뭣도 모르고 접이식 자전거 실었다가 약간 민폐왕이 되었다.



 천사같은 호스트(이하 천사)의 집은 아늑했다. 5년 전 제주로 귀농했다는 천사님은 주말에 이중섭 거리에서 캐리커쳐를 그리고, 음악을 좋아하는 그야말로 예술인이었다. 땀에 쩔어서 생면부지 남의 집에서 화장실부터 들어가 찬물 샤워를 촥 촥~ 하는 우리를 받아준 천사님. 그는 자기 전 함께 동네 산책 할 것을 권했고, 제주 라이프에 대해 궁금했던 우리는 오브콜스 응할 수 밖에 없었다. 맥주 패트 한 병을 사들고 동네 포구에 돗자리를 깔아 가져온 젬배와 기타, 동네에서 주웠다는 멜로디언을 가지고 뭔가 즉흥 잼 연주 같은 것도 하고 그의 김현식 노래 열창도 들었다. 아... 제주의 라이프는 이렇게 자유로운 것이구나... 뿅... (원래 인생은 멀리서 봤을 땐 희극) 


천사의 집에 잘 묵고 출발하기 전.


천사여. 안녕.


 다음 날 아침, 우리를 재워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어떻게 할까 하다가 얼마 전에 다녀온 코타키나발루에서의 기념품, 차와 카야잼을 선물로 드렸다. 또한 천사는 주말에 이중섭 거리에서 캐리커쳐를 그린다고, 우리의 스케쥴이 아다리가 맞는다면 한 번 구경오라고 권하는 아름다운 이별. 아... 오브콜스. 우리는 천사를 다시 만나기 위해 열심히 페달을 밟았다. 




 다시 만난 천사님. 서귀포 올레 시장 맞은 편 길거리가 이중섭 거리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서 매주 주말 플리마켓이 열리는데 여기서 천사님은 아주 프로같은 모습으로 캐리커쳐를 그려주고 계셨다. 다시 재회한 김에 캐리커쳐를 그려달라 부탁드렸다. 


실물에 비해 좀 미화된 느낌은 있다.


천사님 티셔츠 문구가 눈에 띈다.


 우리에게 그림을 선물하고 싶다고 하셔서 그림의 값을 드리려는데 한사코 거절하셔서, 대신 옆에 판매하시는 액자를 함께 구입해 바로 옆 우체국에서 바로 집으로 부쳐버렸다. 이후에 집에 돌아가서 마음이 푸근해짐. >3< 제주도 자전거 여행을 새로운 훈훈한 인연과 함께 시작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다. 낯 가리는 남자친구는 다음 날 천사님에게 '형님'이라 부르기까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의 짐은 가볍지만 마음 만은 풍요로운가보다. 어쨌든 세상은 아직 따뜻하고, 제주도는 살만한 곳이고, 제주도는 젖과 꿀이 흐르는 자유의 땅이라는... ㅠㅠ (제주도 관광객 = '육지' 피플 인증 중...)



쌩뚱한 결론


1. 웜샤워는 참 좋은 곳이다.

2. 웜샤워를 통해 착한 호스트를 만났으므로 앞으로 나도 호스트가 되어 베푸는 삶을 살아야겠다.

3. 웜샤워의 장점은 현지인들과의 다이렉트한 소통이 가능하다는 점. 현지인들만 아는 맛집이나 여행 경로 등의 깨알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모르는 사람과 어울리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겠다.

4. 어쨌든 자신의 집을 낯선 이에게 내어준다는 것은 엄청난 호의가 아닐 수 없다. 다시 한 번 더 천사님께 감사를.

5. 주말에 서귀포 이중섭 거리를 가게 된다면 캐리커쳐로 당신의 추억을 남겨보라. 



 원래 뭘 하려던 포스팅인지 모르겠다. 웜샤워 소개인가, 추억 되새김질인가. 여튼 간에 가난한 자전거 여행자들에게 꿀팁이 될 웜샤워 이용 후기도 여기서 끝. 다음 편은 뭘 쓰나. 




2015/09/30 - [여행의 기억] - 여자친구와 제주도 자전거 여행하기 1편 - 설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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